[펌] "예복을 어찌할 것인가?" 김영봉 목사
- 황선웅 (Isaac)
- Apr 11, 2018
- 3 min read
제가 존경하는 김영봉 목사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문단 나눔, 영문 글 원문 출처 등 추가한 것 외에는 모두 김 목사님의 글입니다.
연합감리교회의 경우 목회자의 ‘예복’이라 하면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예배를 위해 입는 강단용 예복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보통 두 종류의 예복이 사용된다. ‘알브’(Alb)라고 불리는 장백의가 하나요, ‘로브’(Robe)라고 불리는 예복이 다른 하나다. 우리에게는 로브라는 용어보다는 가운이라는 용어가 낯익다. 로브는 중세기에 유럽 대학에서 유래한 것이다. 학문적인 성취의 상징으로 입었던 예복이 교회용으로 변형된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예복은 거의 로브에 해당한다. 반면, 알브는 고대 교회로부터 사용되어 온 예복이다. 흰색의 천으로 만들어진 통옷으로서 보통 발치까지 내려오게 되어 있다. 이 예복은 입은 사람의 어떤 성취나 직분을 상징하지 않는다. 다만 거룩한 성도의 신분을 의미한다. 그래서 교회 전통에서는 세례 받는 이들에게 이 옷을 입게 했다. 성직의 상징이 아니라 성도의 상징이기에 평신도 역시 이 예복을 입도록 허락한다. 다만, 안수 받은 목사는 알브 위에 스톨(영대)를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직분을 상징한다.
목회자의 예복과 관련해 생각해야 할 다른 하나는 평상복처럼 입은 클러지 셔츠와 클러지 칼러다. 오래 전에 어느 감리교 목사가 클러지 셔츠와 칼러를 하고 병원에 심방 갔다가 천주교인으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개신교 목사가 천주교 사제를 코스프레 했다는 것이 그 항의의 이유였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클러지 셔츠와 칼러는 19세기 말에 영국 장로교 목사에 의해 시작되어 파급된 일종의 ‘유행’이다. 클러지 셔츠와 칼러를 고안해 낸 이유는 당시 일반인들의 사치스러운 복식과 구별되기 위함이었다. 즉 권의의 상징으로 고안한 것이 아니라 단순과 검소의 의도로 고안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지금은 천주교 사제의 전유물처럼 오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이해를 가지고 예복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연합감리교회 제자국 홈 페이지에 테일러 버튼-에드워즈(Taylor Burton-Edwards) 목사가 안내문을 올려 놓았다. 교단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교단 안에 전해 내려 오는 신학과 전통을 고려하여 정리한 것이다. 우선, 그 내용을 살펴 보자. (괄호는 나의 부연 설명이다.)
<예복에 대한 열 두 가지 간단한 규칙: 연합감리교회의 예> (12 Simple Rules on What to Wear, What Not to Wear: UMC Edition) 원문 출처: https://www.umcdiscipleship.org/resources/12-simple-rules-on-what-to-wear-what-not-to-wear-umc-edition
1. 감독이 아니라면 자주색 클러지 셔츠를 입지 말라.
2. 연합감리교회에서 안수 받지 않았다면 영대(스톨)을 걸치지 말라.
3. 목회자의 예복으로서 ‘장백의’(alb)를 입도록 권한다. 장백의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모두 입을 수 있으며, 세례 예복으로도 사용된다. 안수의 상징은 스톨이지 장백의가 아니다. (한국 교회는 대부분 알브보다는 로브를 선호한다. 예복을 권위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개신교회 신학의 핵심인 ‘만인제사자장직의 교리’를 따른다면 알브를 사용하는 것이 더 옳다. 예복은 목회자와 성도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신분을 상징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4. 캐속(cassock: 장백의 위에 걸쳐 있는 검은 사제복)은 입지 않는 것이 좋다. 검은 사제복은 수도원에서의 필요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5. 성가대 가운은 다양할 수 있다. 성가대 가운에 대한 특별한 지침은 없다.
6. 채스블(chasuble: 사제복 위에 걸쳐 입는 소매 없는 예복)은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사용하고 싶다면 성찬을 섬길 때에 한 한다.
7. 허리띠(cincture: 장백의의 허리를 묶는 끈)의 사용은 재량에 맡긴다. 이것은 상징이 아니라 편의로 사용하는 것이다.
8. 예복 위에 걸치는 십자가 목걸이(pectoral cross: 십자가가 가슴까지 내려오게 하는 목걸이)도 재량에 맡긴다. 평신도 역시 이 십자가 목걸이를 사용할 수 있다.
9. 어깨에 다는 패(scapular) 역시 재량에 맡긴다. 다만, 이것도 역시 성직의 상징은 아니며 평신도 역시 착용할 수 있다.
10. 연합감리교회의 감독은 특별한 예복을 가지지 않는다. 감독은 감독패를 장백의나 가운에 부착하는 것으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낸다. 클러지 셔츠는 예복이 아니라 작업복이다. (기독교 대한감리회는 감독을 위한 자주색 예복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도 역시 권위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은 안수받은 목회자 중에서 특별한 소임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예복에 있어서 다른 안수 받은 목회자와 구별되는 것은 신학적으로 옳지 않다.)
11. 클러지 칼러를 입는 것은 상황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예컨대, 병원이나 감옥 같은 곳에서 클러지 킬러를 입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항상 클러지 킬러를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클러지 셔츠와 칼러가 목사의 신분을 상장하는 예복은 아니다. 목회자의 미덕 중 하나인 단순과 검소의 표현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성직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이 옷은 필요에 따라 선별하여 입을 수 있다.
12. 클러지 칼러는 목사로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입을 수 있다. (또한 입지 않을 수도 있다.) 연합감리교회에서 안수 받은 사람에게만 허락된 예복은 오직 스톨뿐이다. 안수 받지 않은 전도사라 해도 원칙적으로는 클러지 칼러를 착용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권위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 대한 개신교회의 태도는 제 2 바티칸 공의회를 전기로 상당히 변화되었다. 그 이전까지 개신교회는 천주교회와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 예전을 최소화하는 입장에 있었다. 하지만 제 2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천주교회와의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고 그 영향으로 인해 예전의 전통을 조금씩 회복해 왔다. 성공회가 이 점에 있어서 가장 앞 서 갔고, 감리교회, 루터교회, 장로교회에도 유사한 변화가 일어났다. 예전의 회복 추세에 따라 예복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과거에 버렸던 전통을 되찾았다.
문제는 예전은 다만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신학의 문제라는 데 있다. 예전과 예복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잘 못하면 신학적/교리적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위에 옮겨 적은 예복에 대한 연합감리교회의 입장은 예전과 예복을 회복하더라도 신학적/교리적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내에 예전이 회복되고 예복의 전통이 복구되는 것은 반길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개신교의 기둥인 ‘만인제사장직의 교리’를 부정하는 데까지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감독과 목사를 포함한 모든 성직은 “성도 가운데, 성도를 섬기는 소명”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권위주의적 접근을 버리고 스스로를 낮추는 태도가 필요하다. 강단의 높이도 낮추어야 하고, 강대상의 크기도 작아져야 하며, 예복도 간소해져야 한다. 목사로의 부름은 높아지라는 부름이 아니라 낮아지라는 부름이기 때문이다.
2017년 9월 <기독교 세계> 게재
원문 출처: 김영봉 목사님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youngbong.kim.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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