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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묵상: 공동체를 향한 마음

Updated: Nov 16, 2022

목회를 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 결혼하게 되었는지 들을 기회가 종종 있었다. 결혼을 결심한 동기가 다양했다. 어떤 분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그 사람이 가진 이상(비전)이 좋아서 결혼했고, 다른 이들은 어쩌다 보니… 결혼 적령기에 옆에 있던 그 사람과 같이 살게 되었다고 했다(ㅋㅋㅋ 통계적으로도 이 응답이 가장 많다고 한다). 생각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응답 하나가 있었는데, “불쌍해서…” 였다. 만나던 시기에 갑작스러운 인생의 어려움을 만난 그 사람을 보면서, ‘내가 옆에서 도와줘야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동화에 나오는 낭만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꽤 성경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The Creation of Eve(하와의 창조)

Florentine School, c. 1520 (작자 미상: 미켈란젤로?)


아담과 하와가 처음 만난 그때 아담은 회복실이나 중환자실에 있었을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늑골절제술을 받은 셈인데, 요즘에야 흉강경 등 개흉수술(open heart surgery)이 아닌 방법이 있지만, 아담의 시기는 어땠을까. 물론 하나님께서 어련히 잘하셨겠지만, 그래도 아담이 하와를 처음 만난 곳은 병상 곁이 아니었을까. 그래서인지 아닌지,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셨었다. “돕다”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에벤에셀(도우시는 바위, 삼상 7:12)이란 말의 “에셀”에 해당한다. 돕는 배필이라 해서 속된 말로 여성은 남성의 시다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는 것은(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이 천둥과 번개로 이스라엘을 도우신 것처럼 내게 주신 그 사람을 힘있게 돕고 섬기라는 뜻이다. 믿음 없는 내 상상력에 불과하지만, 돕는 배필로 주신 하와의 등장과 늑골절제술 이후 회복 중인 아담의 모습은 뭔가 합이 잘 맞는다.


피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보시며 연신 ”좋다!” “얼쑤!”를 외치시던 하나님은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보시면서 처음으로 “좋지 않다(창 2:18)”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다 그런 사람들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독신주의자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혼인이 아니더라도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돕고 섬기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할 뿐이다. 완전하신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으로 자기를 드러내셨고 함께 일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불완전한 우리들이야 오죽할까.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공동체를 이야기한다.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 그리고 교회라는 공동체. 몇몇 서신을 제외하면 성경의 거의 모든 책은 공동체를 위해 쓰인 책들이다.


전 세계는 개인주의 사회로 더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환영하는 변화다. 집단이나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들의 안녕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특히 한국 사회는 일제 강점과 전쟁 등의 국난을 거치고 산업화 민주화를 이뤄내면서 그런 경향이 더 심했다. 개인의 안위보다는 전체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언제나 더 컸다. 일견 개인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반가워하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이 변화가 교회, 지역 사회, 국가 등의 공동체에 미칠 영향에 대한 걱정이 있다. 건강하게 세워진 성숙한 개인은 반드시 공동체를 먼저 생각한다고 믿는다. 가족들을 생각하고, 우리 동네와 지역 사회를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한다. 공동체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어서도 아니다. "불쌍해서" 그렇다. 도와주고 싶어서 그렇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시고 부르셨기 때문이다.

 
 
 

2 commenti


Thomas Pak
Thomas Pak
17 ago 2022

아직 미혼으로서 마음에 와 닿는 글이라 내쉬빌 한인 톡방에도 공유 할께요. 목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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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웅 (Isaac)
황선웅 (Isaac)
17 ago 2022
Risposta a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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