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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황선웅 (Isaac)

이사야 7:1-9 묵상: "제 삼의 길, 가장 선한 길"


(Image credit: http://drewbmcintyre.com/2013/12/22/n-t-wright-trivialized-discourse-and-the-need-for-a-third-way/)


이사야 7:1-9 본문에서, 아하스 왕은 두 가지 선택지의 오류에 빠져있다. 두 가지 경우에서 선택해야 하는 경우, 그 둘 중에 하나는 무조건 옳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이다. 둘 중에 하나는 무조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착각하는 것. (짜장면과 짬뽕 중에 고민을 너무 한 나머지 탕수육은 고려조차 못 해 본 경험이 다들 있으리라!)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상상조차 못하는 새로운 길이 있다. 가장 좋은 길, 가장 선한 길이다.


북이스라엘/아람 연합군에 포위된 아하스에게는, 1) 피터지게 싸우다 죽거나, 2) 아니면 그들의 반 앗시리아 동맹에 가담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이외에는 사실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이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1번도 위험하고, 2번도 결국에는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1번에는 자기보다 힘이 센 두 나라와 싸워야 하는 위험성이, 2번 선택에는, 지금 당장은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대국 앗시리아가 큰 군대를 이끌고 서진할때, 반란군으로 찍혀서 완전히 망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제삼의 대안을 주신다. 바로 “가만히 있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할까 고민하지 말고,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선택"을 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 길이 가장 좋은 길이었다. 마치 홍해앞의 이스라엘이 추격해 오는 애굽 군대에 투항하느냐 아니면 그들과 싸우느냐 고민할 때,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너희를 위하여 행하는 구원을 보라" 말씀하신 것과 같다. 제삼의 길, 그리고 가장 좋은 옵션이었다.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애굽의 정예 군대를 수장시키셨다.


요한복음 9장에서도 나면서부터 눈 먼 사람을 두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묻는다. "이렇게 된 것이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이때 주님은 두 가지 선택의 오류에 빠지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양자를 모두 부정하신 뒤에, 이렇게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된 것이라 선언하셨다.


하나님께는 가장 좋은 길이 있다. 가장 선한길을 그분은 아신다.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 마음과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내가 고민하는 선택지들 외에 가장 좋은 길, 가장 선한 길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그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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