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윌로우 크릭 교회, 빌 하이벨스

Updated: Oct 14, 2023



빌 하이벨스 (Bill Hybels) 는 제게 정말 큰 영향을 준 사람입니다.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그의 설교와 목회는 제게 목회 사역에 대한 어떤 큰 그림같은 것을 그려주었습니다. 1) 그의 설교의 가장 큰 특징은 따뜻함입니다. 너무 강하게 청중을 몰아세우지 않으면서도 전하는 자의 사명을 다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부드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회중을 결단의 자리로 인도하는 설교, 특별히 예배에 앉아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과 냉담자들을 향한 그의 열정은 정말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2) 그의 목회는 진정한 복음주의가 이 시대에 어떤 영향력을 드러낼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성경적 복음의 원리를 지키면서, 교회는 어떻게 이 땅의 어둠과 악에 대항할 수 있는지, 영혼을 구원하는 일과 가난/인종차별/성차별/환경문제 등의 사회 문제들 사이에서 교회는 어떻게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목회였습니다. 3) 많은 목회자들이 끝이 좋지 않았는데, 후계자를 일찍 훈련하고 세운 점도 훌륭했습니다. 자신의 포지션을 두 개로 나누면서 설교의 사역은 Steve Carter 라는 남자 목사에게, 행정 전반과 교회의 치리의 사역은 Heather Larson 이라는 여자 목사에게 나누어 맡긴 것도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끝까지 존경할 수 있는 목사로 남았구나,' 감사했습니다.

Image Credit: Christianity Today (Bill Hybels, Heather Larson, and Steve Carter)

그러나 은퇴를 발표한 이후 불거진 성추문 문제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윌로우 크릭 장로회 (Elders' Board, 감리교의 기획위원회 혹은 장로교의 당회 정도가 되겠습니다) 가 내사를 벌였고 제기되었던 모든 사안들에 대해 혐의 없음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빌 하이벨스 목사는 교회에 누를 끼친 것 같다며 돌연 자신이 발표했던 은퇴 시점보다 6개월 앞당겨 급히 사임했습니다. 문제를 제기했던 이들 중 한 명이었던 팻 바라노우스키 (Pat Baranowski) 라는 여성은 1980년대에 빌 하이벨스의 수석 비서 (Executive assistant) 로 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뉴욕 타임즈가 이 여성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대대적 기사를 발표했는데 역겨워서 읽을 수 없었습니다 ("He’s a Superstar Pastor. She Worked for Him and Says He Groped Her Repeatedly."). 자신이 가진 위치와 힘을 이용해서 여성을 성적 도구화하고, 교회의 미래를 들어 입을 다물게 한, 위력형 성추행의 전형이었습니다.


결국 Lead Teaching Pastor 였던 스티브 카터 목사가 지난주에 사임했고, 시카고 트리뷴의 기사 ("Willow Creek pastor, elders step down, admit mishandling allegations against Bill Hybels")에 따르면, 헤더 라르손 목사와 장로단 전체가 사임하기에 이르렀네요. 윌로우 크릭의 캠퍼스 목사 중 한 명이 인테림 목회자로 와 있다고 합니다 (*Interim Pastor: 갑작스런 사정으로 담임 목사 궐위 시 1년 정도 담임 목사 청빙까지만 사역을 맡아주는 임시 목사).


뉴욕 타임즈의 지적이 뼈 아팠습니다. 빌 하이벨스가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은 윌로우 크릭 교회가 빌 하이벨스의 왕국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교단에 속하지 않은채로, 연회나 감독의 견제를 받지 않는 독립 교회의 구조였고, 교회내에서도 담임 목사를 견제하거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기구 자체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장로단 (Elders' board) 도 담임목사가 임명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는 사무엘하 11장 이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삼하 8장은 다윗의 승전 기록입니다. 모두 다윗이 직접 전투에 나갔고 승리했지요. 돌연 10장에 가서는 암몬과의 전투가 나오는데 10:7에 보면 다윗이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암몬 정도는 요압이 알아서 할 수 있을거야. 굳이 나까지 갈 필요 없다.'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 가운데 유혹과 일탈의 음울한 전주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평정하게 하시고, 승리를 주신 그 때, 누구도 당할 자 없게 된 바로 그 때였습니다.


삶도 목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 없는 삶을 구할 것이 아니고, 견제가 없는 자유로운 목회를 꿈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한 경계 (바운더리) 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교인 총회에 손 들고 이상한 질문을 하는 성도들로 인하여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교인들 가운데 생겨나는 크고 작은 아픔에 제 마음이 늘 깨어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제 기도가 사회의 가장 낮은 자들의 아픔을 품는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무조건 큰 것보다 제 분수에 맞는 것, 그리고 허탄한 성공이라는 신화보다 후대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명예로운 끝, 떳떳한 죽음을 구하겠습니다.

Kommentare


@All Rights Reserved. 2023.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