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라는 것에 대하여
- 황선웅 (Isaac)
- Apr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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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권위에 기대서, 성경이 말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캐내면 그것으로 설교자의 사명은 끝난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이 말씀이오.' 하면 사람들 마음이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고... 하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쁜 포장도 필요한 것 같다. 따뜻한 이야기도 필요하고, 유머도 필요한 것 같다. 청중을 리드하는 말솜씨도 필요하고, 설득력있는 논리도 필요한 것 같다.
아이러니 하지만, 말씀 자체가 좌우에 날선 검과 같기 때문이다. 말씀이라는 이 칼은 정말 아프다.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박한 멸망을 선고하는 칼이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해 버리는 칼이고,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라고 도전하는 칼이기 때문이다.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그 아픔은 찔려 본 사람만 아는 아픔이다.
고로 설교자의 사명은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찾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듣는 이들이 그 칼이 자기를 찌르는 것을 허락하도록, 전문용어로 바꾸면 하나님 은혜에 자기 삶을 맡길 수 있도록, 말씀을 순화하기도 해야겠고, 청중을 달래기도 해야겠고, 얼르기도 해야하는 것 같다.
말씀을 잘 아는 설교자가 되고 싶었다. 말씀의 참 의미가 무엇인지. 왜 그런 말씀이, 하필 여기에 나오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이제는 마음이 따뜻한 설교자가 되고 싶다. 교인들이 말씀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헤아리는 설교자. 말씀이라는 칼이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설교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칼이 아니라 수술용 메스임을 알고, 사명에 충실한 설교자. 그런 설교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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