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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사이에서

Updated: Nov 16, 2022

담임목사님께서 출타 중이셨던 지난 10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교우 한 분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이었다. 스태프로 섬기면서 ‘Minister for the Young’이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온 나였지만 장례예배는 여전히 미개척지로 남아있었다. ‘장례를 잘 준비해서 인도하라’는 목사님의 전화에 잠시 패닉했지만,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은혜였다. 목사님도 또 유가족들도 선뜻 풋내기 목사가 장례를 인도하게 허락해 주셨고, 장례를 준비하고 인도하는 내내 많은 분들이 자원해서 도와주셨다. 가장 감사했던 일은 하나님께서 내게 부활의 소망과 목회자로서의 소명을 다시 보여주신 점이었다.


장례 예배를 준비하면서 선배 목사님들께 전화해서 묻기도 하고 교단에서 발행한 예배 순서들도 열심히 찾아보았다.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중 하나가, 연합감리교회에서 장례예배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Funeral Service(장례예배)라고 일반적으로 부르지만, A Service of Death and Resurrection(장례/부활 예배)이라는 용어도 계속 등장했다. 교회 공동체가 성도의 죽음 앞에 함께 모여 예배하는 첫 번째 이유는 부활의 능력을 선포하는 데 있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죽음을 이기는 생명, 죽음 앞에서 우리를 감싸 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또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교회 공동체의 위로를 선포하는 것이 장례/부활 예배의 핵심이었다. 우리는 병들고 늙고 없어질지라도 우리 마음에는 이 소망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베드로전서가 Living Hope 산 소망이라고 부르는 이 소망이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고인과 평생을 함께하신 권사님을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눴다.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신 뒤, 성실하게 가족들을 위한 삶의 터전을 일구는 한편, 신앙을 받아들이고 평생 교회에 헌신하셨던 고인의 삶이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분이 걸으신 길을 기념하면서 곳곳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발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창세기 47장에 바로 앞에 선 야곱은 “우리 조상의 나그넷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말하는 노구의 야곱은 두 번이나 바로를 축복한다(7절, 10절). 굴곡이 많은 삶 가운데 엄청난 고통을 견뎌낸 그였지만, 그가 겪은 고통은 어느새 다른 이들을 위한 복으로 승화되어 있었다.


예배가 시작되면서 성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유가족들이 예배당으로 들어왔다. 고인의 아내 권사님은 활자가 큰 성경책을 손에 들고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중앙 통로를 따라 들어오셨고, 자녀들, 손주들이 뒤따랐다. 강단에 서있던 나는 차오르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천국을 향해 걷는 우리의 삶이 이 한 장면에 들어있었다. 우리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가족들의 후원과 공동체의 사랑 가운데 천국을 향해 걷는다. 이 땅에서의 영적 순례 중 어느 한순간에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죽음은 결코 우리 삶의 마침표를 의미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관문을 지나 우리는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간다. 죽음은 눈물이나 고통이 없는 하나님이 온전히 다스리시는 영광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일 뿐이다.


죽음 앞에서 산 소망을 선포하는 사명, 또 고통당한 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위로하는 사명을 내게 주셨다. 겸손하게 또 성실하게 감당하리라 다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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