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대로 된다
- 황선웅 (Isaac)
- Sep 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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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일 중고등부/대학부 예배에 몇 가지 광고 사항이 생각났다. 찬양 중간에 들어오는 이들, 성경도 없이 폰만 덜렁덜렁 가져오는 이들 때문이었다. 정죄가 아니라, 다시 예배의 중심으로 관심을 모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매주 보내는 뉴스레터에 또 주보에 쓸 말을 생각했는데... 결국 택한 말은 "예배 강화."
'어라 이 말 어디서 많이 봤던 것인데. 어디였지?' 어릴적 내가 자란 교회 주보에서였다. 내용은 비슷했다. 예배 시간 지키기, 휴가철 주일 지키기, 단정한 복장, 준비된 예배 등. 나는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었던 우리 아버지가 즐겨 쓰셨던 그 용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예배 강화? 예배가 포켓몬인가 아니면 유리인가? 표현도 표현이거니와 그 거친 레토릭이 나는 싫었다.
2. 오늘 카톡으로 여기저기 연락을 하다가. 어떤 분이 내게 "우리 교회 교인 복지가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교인 복지... 도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김영석 목사님이 늘 하셨던 말씀이다. 목회자의 역할은 성도들이 자기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돕는 것에 그쳐야 한다라고 늘 힘주어 말씀하셨다. 평신도 사역은 목회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목회자의 역할은 평신도 사역의 자리를 만드는 것, 그들을 훈련하고 세우는 것, 사역자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영어 속담에 You are What you eat 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먹는대로 된다"쯤 될까. 우리는 먹는대로도 되지만, 사실은 보는대로 된다. You become what you have seen. 사도 요한은 이런 관점에서 성육신을 본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으셔서, 그 분을 온전히 드러내고 싶으셔서 하늘 보좌를 박차고 이 땅에 오셨다. 그래서 14:9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신다.
3. 어머니께서는 늘 내게 "너는 참 상사복이 많다"고 말씀해 주셨다. 훌륭한 분들을 지근거리에서 모시고 배우는 복을 누렸고, 그 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좋은 목회자, 평신도, 멘토, 나는 그 분들의 사역과 삶을 눈으로 보았고, 이제 그것이 조금씩 조금씩 내 것이 되어 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고, 나는 여전히 노력 중이다. 그러나 그분들 덕분에 내 안에 분명 어떤 높은 기준, 명확한 정체성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동시에 나도 좋은 본을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덧붙여 본다. 목회의 경력이 몇 년이든, 나이가 몇이든, 내가 걸어간 길이 다른 누구에게 이정표가 될 것이다. 기왕이면 분명한 이정표, 복을 끼치는 이정표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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