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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picture황선웅 (Isaac)

요한계시록 11:3-10 묵상, 증언하는 사명

Updated: May 29, 2020


Martyrdom of the Maccabees, by Ciseri, Antonio.

PC: Britannica entry "Martyr"


본문이 말씀하는 두 증인이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다. 혹자는 포로기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던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떠 올리기도 하고, 6절 말씀을 통해 엘리야와 모세를 떠 올리기도 한다. 이들이 누구를 가리키든지 간에, 그들은 말씀을 맡은 자들이며 (5절,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하나님의 권세를 받아 이 세상에서 권능을 행하는 자들이다 (3, 6절).


여기까지는 좋다. 성도의 고통과 환란을 계속 다뤄 온 계시록의 스토리 라인에서, 두 증인의 등장은 뭔가 짜릿한 역전승을 암시하기까지 한다. 드디어 하나님이 새로 시작하시는 세상의 끝이 오는 것인가? 박해의 시간이 드디어 끝난 것인가? 그러나 엉뚱하게도 (anticlimactic) 두 증인은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7절). 유대 문화가 중요시하는 적절한 장사 예법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채, 두 선지자의 시신은 사람들의 비웃음 거리가 된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7-10).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읽고 있었을까? 아마 두 선지자에 자신들의 상황을 대입해 보고 있었을 것이다. 죄로 오염된 땅에서, 성도들은 마치 하나님앞에 선 두 감람나무나 두 촛대와 같은 존재였다 (4절). 그들에게도 주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었고, 공동체 안에서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결국 짐승과 같은 로마 제국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고,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을 비웃고 조롱할 것이다. 슬프지만, 이것이 성도의 운명이고, 교회의 운명이다. 그러나 교회가 이 상황에서 기억해야 하는 사명이 있으니, 7절이 말씀하는대로, “증언을 마치는 것 (when they have finished their testimony)”이다. 파국적 결말을 맞게된다 할지라도, 끝까지 증언해야 한다.


증언이라는 말의 그리스어 단어는 μαρτυρία (영어 음역: marturia)인데, 이 단어에서 martyrdom (순교)라는 말이 나왔다. 순교자는 martyr 라고 한다. 죽음을 통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이 순교이다.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 20장에,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했다. 뒤집어 보면 증언이란 끝까지 하는 것,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많은 분들이 생각났다. 우리가 좋은 말로 독립운동이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로 현대화 된 군 체계와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독립의 당위성과 끈기 외에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그들과 싸워야 했다.


1932년 1월, 일본이 중국 본토를 침공한다. 중국이 30만 대군으로 결사항전했으나 상하이를 일본에 내 주고 만다. 3개월 뒤인 1932년 4월에 일본이 상하이 점령을 축하하면서 대규모 행사를 갖는데, 이것이 바로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졌던 홍커우 공원 기념 행사였다. 윤봉길은 이 거사를 통해, 당시 상하이 파견군의 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폭살하고, 또 다른 몇 명을 제거하고, 일본 군 정치 지도자들에게 큰 상해를 입혔다.


윤봉길의 의거에 깊은 감명과 도전을 받은 인물이 당시 중국의 장제스 총통이었다. 그는 “중국의 100만 대군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청년 하나가 해냈다”고 격찬했다고 한다. 윤봉길의 의거는 2차 대전 이후 한국이 독립국의 지위를 받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카이로에서 미국, 영국, 중국의 대표가 만나 2차 대전 이후 식민지 문제를 논의했다. 당시 영국은 인도를 미국은 필리핀을 (거의) 식민지배하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에 반대했다. 서구 열강은 미영중 삼자 신탁통치를 제안했다. 그러나 장제스 총통이 고집스레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고, 이는 윤봉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줄기찬 항일 운동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윤봉길 의사가 의거 이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더 살고 싶은 것이 인정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택해야 할 오직 한 번의 가장 좋은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은 아벨의 믿음을 이와같이 말씀한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받았으니…” 이 구절 말미에 이렇게 말씀한다.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사는 삶에는 좋은 결과뿐 아니라 오히려 고통이 따를 수도 있다. 로마의 박해 시대는 증언의 결과로 죽음이 주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말씀한다. 성도의 사명은 끝까지 증언하는 것이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증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불분명한 결과 앞에서도 사명을 놓지 않는 것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성도는 죽기까지 믿음의 증언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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