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태생부터 도시의 종교였다. 다윗은 시온산성을 빼앗아 다윗성이라고 부르며 수도를 삼았다 (삼하 5:6-8). 복음서는 예수님이 갈릴리 시골에서부터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여정을 그리며, 바울이 교회를 세운 곳들은 모두 그 당시의 중심 도시들이었다.
도시안에 존재하면서, 기독교는 기성권력구조 (establishment of power) 에 저항하기도 하였고 그것과 결탁하기도 하였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를 일방적으로 지지한 것이 결탁의 예라면, 신사참배를 목숨을 걸고 거부한 고신 장로교인들과, 중세의 수도원 운동은 저항에 해당한다.
기독교인들의 독특한 삶의 자리는 이 갈등안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도시에서 모였지만, 변방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 곳은 도시이지만, 그 하나님은 우리를 힘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 자리와 그 밖으로 나가도록 도전하신다.
아모스를 위시한 선지자들이 선포한다. 매력적인 바알이나 아세라를 버리고, 별 인기가 없는 야훼라는 하나님께 돌아가라는 것이다. 선지서들은, 풍요로 가득한 가나안 땅에서부터, 가파른 시내산으로 또 척박한 광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낸다. 성령을 받은 초대 교회는, 공용어인 헬라어가 아니라, 각 지방의 말로 방언 말하기를 시작한다. 도시에 사는 교인들이지만, 지방으로 가라하시는 명령이다.
이제는 잠시 신문을 내려놓고, 성경으로 돌아갈 때다. 말씀으로 돌아가서, 말씀안의 하나님이 초대하는 곳으로 우리의 눈을 들때다. 소외된 자들, 약자들을 향해서, 복음이 필요한 변방을 향해서 우리의 발걸음을 옮길 때다.